[Riview/뮤지컬] 웨스턴 스토리

[Riview/뮤지컬] 웨스턴 스토리

도른 자들이 만드는 도른 자들의 무대

풀잎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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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극?

서부극에 대한 사람들의 이미지는 어떨까. 적어도 나에게는 ‘한때는 시대를 풍미했지만 지금은 한물 간 장르, 옛 사람들의 정취와 추억이 가득한 총잡이들의 이야기’ 정도로 이야기해 볼 수 있겠다. 그래서 서부극을 전면에 표방한 제목을 달고 있는 뮤지컬이 신작으로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게 갑자기 뭔가 싶었다. 물론 무대에 오르는 공연이 보다 다양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게 서부극의 등장은 아니었으니까.

근데 발표된 라인업을 보니 배우들 면면이 꽤 밑을 만한 인물들인 것이다.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역을 꽤 많이 해 왔던 그런 배우들. ‘유쾌한 사기극’이라고 표현하는 걸 보니 발랄하고 쾌활한 분위기의 공연인 건 맞는데 이게 또 이 배우들이 가능하려나 ... 하는 생각도 들고. 내가 갔던 날 캐스팅은 강혜인, 임준혁, 김종구, 이정화, 최호중, 정재헌, 전재현이었는데, 믿을 만한 웃기는(?) 배우는 최호중 정도? 어쨌거나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객석에 앉았다.

난리법석 코믹 서부극

이야기의 골자는 간단히 이야기하면 이렇다. 황량한 서부 사막 한 가운데, ‘다이아몬드 살롱’이라는 술집이 있다. 이곳이 바로 이 작품의 배경이다. 이 술집의 상속녀 제인 존슨은 여기를 떠나고 싶어 안달하는 철부지 아가씨. 그리하야 비장의 계획을 세우는데, 현상금이 걸린 셋을 모다 잡아다 넣고 이 현상금을 가지고 도망가겠다, 뭐 이런 계획이다. 그러는 중에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동부에서 건너온 빌리가 등장하고 그녀가 타겟으로 잡은 사기꾼 배우 셋이 차례차례 등장하면서 이 장소는 난리법석이 된다. 결말은 코믹극답게 즐겁고 신나게 끝난다. 사실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그리 정교하지 않고 구성이 탄탄한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또 완전 형편없는 것도 아닌 그런 내용이더라는. 굳이 이 글에서 내용에 대한 비판은 너무 넘치는 일인  듯 하니 패스하는 걸로.

작품의 미덕

근래 본 공연 가운데 가장 생각 없이 본 작품 같았다. 어느 순간 그냥 넋을 잃고 봤지 뭔가. 배우들이 다들 그냥 미친 거 같았다. 아마도 무대 뒤로 가면 급 현타가 오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 아니, 이들의 이 도른 자 본능은 당최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역시 배우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나는 이 배우들이 코믹극에 나오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보니, 이렇게 정신 놓고 하는 공연이 정말 신기했다. 어쨌거나 내용 따위는 저 짝에 던져놓고 키킥거리면서 쪼개고 보다 보면, 1막이 지나고 인터미션이 지나고 또 2막이 지나가 버리고 만다. 이렇게 내용이 없을 거면, 그냥 100분짜리로 쌈박하게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배우들이 내내 즐거워 보이니 그것만으로도 된 건가 싶기도 하고. 그리고 어쩌면 이런 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공연은 바로 이렇게 생각 없이 웃어댈 수 있는 그런 공연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 이 작품의 최고의 미덕은 이게 아닐까.

굳이 이게 왜 서부극이어야 했나, 하는 생각은 든다. 그냥 서부 한 가운데 덜렁 있는 술집에서 현상금을 소재로 이뤄지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냥 우리나라 한 구석탱이 술집에서 벌어지는 일이어도 되고, 유럽 어느 시골 마을에서 칼잡이들끼리 벌이는 이야기여도 상관없을 거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그냥 썩 연기 잘하고 무대에서 익숙하게 놀 수 있는 배우들만 잘 섭외한다면 이 말도 안 되는 소동극이 그럭저럭 잘 이끌어질 거 같은 느런 느낌. 아니지. 그게 가장 중요한 연출적 요소일런가.

애드리브, 애드리브 ...

근래 본 가운데 가장 배우 애드리브가 많아 보이는 작품도 바로 이 공연 같다. 솔직히 배우들의 지나친 애드리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자칫 어느 특정 장면의 분위기나 메시지를 손상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험 상 대체로 그렇다.) 그런데 이런 공연이라면 딱히 그럴 걱정이 없을 것 같았다. 마치 공연 전체가 장편의 스탠딩 코미디를 보는 느낌이었기 때문. 그런 의미로 캐스팅 조합이 바뀌면, 그리고 이 공연이 조금 더 지나가면 아마도 무대의 분위기가 그때그때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느낌도 들었다. 그런 이유로 뭔가 재관을 하는 여느 이유와는 다르게, 공연 후반부에 캐스팅을 바꾸어 또 가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삶이 복잡할 때, 그래서 뭔가 생각없이 웃고 싶어질 때, 그럴 때라면 이 작품을 추천한다.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솜털처럼 산뜻한 기분으로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어제 본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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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공연장을 찾은 것이 어언 15년이 되었습니다. 이곳에선 그간 꾸준히 객석에서 느꼈던 다양한 이야기를 함께 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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