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뮤지컬 vs. 책 프리다 칼로, 내 영혼의 일기

[프리다] 뮤지컬 vs. 책 프리다 칼로, 내 영혼의 일기

고통 속에서 피워낸 화려한 삶

풀잎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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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훔쳐보기

누군가의 출판된 일기나 편지를 보면 뭔가 훔쳐보는 느낌이 들곤 했다. 아마도 그 글을 쓴 당사자는 이렇게 수많은 대중들이 자신의 글을 읽을 걸 몰랐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예전에 '작문교육론' 전공 수업 시간에, '일기는 독자가 없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나를 독자로 쓰는 글’이라는 말을 듣고 난 이후, 좀 더 그런 생각이 강해졌다. 하지만 대개는 그 일기나 편지가 글쓴이 즉, 유일한 독자의 사후에 출판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뭔가 그 한 사람에게조차 허락 받지 않은 글을 몰래 보는 것 같은 묘한 죄책감이 들더라는. 그래서 이번 책도 그런 기분으로 시작했다. 옮기고 엮은이의 비장한 느낌의 서문을 읽고 나니 더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다.

보여주기 위한 일기, 보여줘도 상관없는 일기

근데 막상 다 읽고 나니, 어쩌면 그녀도 짐작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누가 읽어도 또는 읽기 않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썼으려나. 이 책은 정말 암호의 느낌이었다. 진짜 프리다, 오직 본인 혼자서만 해석할 수 있는 그런 암호 책 말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정말 쉽고 빠르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나 어렵게 책을 읽었다. 읽기는 정말 빠르게 읽었는데, 사실 되새겨 보면 무엇 하나도 남은 것이 없는 느낌이다.

옮긴 이가 다양하게 각주를 달아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여 주었지만, 솔직히 이 대목을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많나, 하는 의문이 너무나 많이 들었다. 예를 들면, “두 마리의 개가 실타래와 실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통해 신체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118).”라니, 도대체 이게 밑도 끝도 없이 뭐란 말인가. 솔직히 옮기고 엮은이의 공로는 인정하지만, 이건 좀 주제넘은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걸 프리다 칼로가 알면 과연 뭐라고 했을까, 하는 느낌도 드는.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아마도 일기를 미래의 자신이 아닌 그 순간 현재의 자신을 위해 썼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녀의 그림이 그랬듯이 말이다.

프리다의 삶을 담은 뮤지컬

그런 의미에서 뮤지컬은 정말 책과는 다른 의미의 재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본 프리다 역의 최정원 배우가 배역과의 싱크로율이 너무 높아서 그게 참 놀라웠다. 각지고 오목오목한 좁은 얼굴부터 성숙한 느낌의 춤과 대사, 노래가 뭔가 정말 프리다 칼로의 영혼이 무대에서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고심을 한 흔적이 있긴 했지만, 이런 토크쇼의 형식을 왜 차용했는가에 대해서는 좀 의문도 있었다. 어딘가는 <헤드윅>이 연상되긴 했지만, 그건 엄연히 '가수'란 직업과 잘 어울리기에 의미가 있으니까. 프리다는 분명 화가였는데, 갑자기 토크쇼에서 너무나 많은 춤과 노래를 보여준다는 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뮤지컬이다, 뮤지컬이다를 되뇌인다고 해도 말이다.)

배우 최정원

토크쇼를 표방한 극이다 보니, 순간순간 등장하는 발랄 터지는 넘버들과 오그라드는 대사 때문에 몰입이 순간순간 깨지기도 했지만, 최정원 배우가 입을 여는 순간 다시 몰입이 되곤 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최정원은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우리나라 뮤지컬계에서 상징하는 바가 큰 배우다. 20여년을 지내는 동안 그녀는 한결 같이 정상의 모습과 컨디션을 보여주고 있다. 나이가 들고, 엄마가 되어도 여전히 무대에서 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배우. 아마도 이 배우를 보는 뮤지컬계의 수많은 후배 배우들, 특히 여자 배우들의 경우라면 앞서 걸어가는 선배의 모습을 보는 감흥이 남다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아마도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란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가 지금처럼 꾸준히 무대에서 아름답게 늙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것이 무대 아래 현실을 사는 나에게도 참 많은 위로와 용기가 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날 이 관극은 최정원이었기에 더 감동이 있었다.

그러나 연출의 흠

나는 리사 배우의 캐스팅으로 봤는데, 알고 보니 같은 배역의 리사와 전수미 배우가 다른 연출로 연기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특히 탭댄스 부분이 리사 배우의 공연에는 없다고.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입을 모아 이 <프리다>의 백미로 이 장면을 들더라는. 내가 보지 못한 장면이 이 작품의 백미라니, 뭔가 속은 느낌이 들어 배가 아프더라는. 물론 이 장면이 제작진이 의도하지 않게 사람들의 호응을 얻은 거라면 모르겠는데(그렇다 하면 이건 제작진의 감각이 떨어지는 것일 테고), 의도한 것이었다면 완전히 연출의 핀트가 어긋난 게 아닌가 싶었다. 동일한 장면의 리사 배우의 연기와 연출은 심지어 이 작품에서 들어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나가며: 기구한 여인의 삶

가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홍보 문구로 ‘기구한 여인의 삶’ 따위의 문장이 가끔 보이는데, 그녀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니, 프리다 칼로야 말로 이런 삶을 살아온 여인들 가운데 정말 탑 오브 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가운데 어쩌면 그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을 꾸준하게 지켜올 수 있는지도 대단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대한 희망을 끈을 놓지 않고 그렇게 창작욕을 불태울 수 있는 것도 엄청났다. 그냥 와, 이건 뭐지 ... 당최 범접할 수 없는 어떤 다른 차원의 우주에 사는 그 누군가를 보는 느낌이었다. 세상에는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많고 많고나.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작품과 뮤지컬은 나에겐 어떤 깊은 울림을 주기 보다는, 그냥 내 삶에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엄청난 인물의 영웅담을 본 느낌도 들었다.

무대로 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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