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뮤지컬] 미드나잇-액터뮤지션

[Review/뮤지컬] 미드나잇-액터뮤지션

인간의 나약함과 지배자의 영악함

풀잎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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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초연 이후 꾸준하게 올라오는 소극장 뮤지컬 작품이다. '액터뮤지션'과 '앤틀러스' 방식으로 연출이 나뉘어져 있는데, 초연은 '앤틀러스'로 시작했다. 이 둘의 차이는 아주 극명한데, 개인적으로는 이번 시즌에 단독으로 개막한 '액터뮤지션' 방식을 더 선호한다. '액터뮤지션'은 배우가 연주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즉 각 배역을 맡은 배우가 악기 연주도 맡는다는 그런 이야기.

물론 공연 중에 배우가 간단하게 연주를 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형제가 화해의 제스추어로 피아노 연탄을 연주하는 것 같은?)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에서 구현되는 모든 음악을 배우들이 해결한다. 내가 처음 액터뮤지션의 무대를 본 건, 뮤지컬 <컴퍼니> 영상이었는데 그때의 놀람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창작으로는 <모비딕>에서 처음 시도되었는데, 그때도 사람들의 호응이 꽤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배우가 악기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기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을 보는 건 뭐랄까, 정말 진짜배기 뮤지컬을 보는 듯한 쾌감이 있다.

이 작품은 1937년 12월 31일에서 1938년 1월 1일을 넘어가는 밤에 이뤄지는 이야기다. 검열의 시대, 고문의 시대, 고발의 시대를 다루고 있다. 그런 험난한 시대의 정 중앙에 있는 한 부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마도 냉전 시대 끄트머리에 초등학교에 다녔던 거 같다.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을 수도 없는 나이에 그런 험한 말이 나오는 가사를 6.25가 되면 배워 부르곤 했다. 나와 나의 친구들은 6월이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주입 받고, 공산당을 저주하는 메시지를 담은 포스터를 그리며 10대 초반까지를 보냈다. 말 그대로 냉전 시대의 초등학생이었던 것이다. 그때 들었던 게, 북한에선 공산당의 압제로 가족들끼리 친구들끼리 서로 고발하면서 지낸다는 이야기였다. 잊을 만하면 간첩의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고 그러니 우리는 더 경계를 하고 살아야 한다는 걸 주지 받는다. 들을 때마다 난 어린 마음에 ‘남한에 태어나 얼마나 다행인가’를 되뇌이곤 했더랬지.

이 작품의 부부도 내가 어릴 적 들었던 북한 사람들처럼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나의 생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우리의 지도자의 생각이 그렇다니까 그런 삶, 말이다. 내가 이 땅에 태어났으니 나의 정치적 소신도 정해져 버리는 그런 삶. 옆집에 사는 이웃이 바로 끌려가고 그건 내일의 '나'가 될 수도 있다. 아랫층에 사는 친구의 부부를 고발하지만, 그게 나의 용기나 신념 때문이 아니라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이다. 물론 그렇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 무서우니까. 근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게 과연 북한만의 일이었을까?  

당시 북한의 실상이 정말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미드나잇> 무대 정면에 걸려있는 스탈린도, 대륙을 쥐락펴락하던 마오쩌둥도 북한에 살았다는 괴수(?) 김일성도 이제 세상에 없다는 것. 그리고 나 역시도 그때 그 시절의 빨갱이를 더이상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맑스가 읊조리던 자본주의의 망령과 함께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우리 깊숙한 어디에 여전히 잠재되어 살아있는 것인지, 그건 알 수 없지만.

하지만 이렇게 그 시절을 다루는 작품을 보면서 섬뜩함을 느끼는 건, 한 사람의 개인이 국가의 이념과 강제에 밀려 인간성을 잃고 자신의 신념과 소신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일은 인간 역사를 통해 꾸준히 반복되어 왔다는 것이다. 단지 그것이 형태만 달라질 뿐. 그런 이유로 스탈린 초상이 걸려있는 이 작품이 여전히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논리적으로 딱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 느낌임에도 극의 중후반까지 그냥 곧이곧대로 공연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바로 조각조각 우리 머리 속에 박힌 나약한 인간의 본성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악마든 비밀 경찰이든 또 다른 무엇이든 그게 무엇이 중요한가. 나는 지금 두렵고 겁이 나는 걸, 그리고 그 누구보다 나 자신과 내 가족의 안위가 소중한 것을.

37년의 마지막 날, 이 부부에게 찾아온 악마는 남편과 아내의 밑바닥을 다 긁어 보여준 다음, 결국 그 중 하나의 영혼을 가져간다. 남편과 아내는 각각 상대방을 위해서 고발과 자백을 했다고 이야기하지만, 결국 그것이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순식간의 파국으로 휩쓸려가는 이 작품의 결말을 온전히 따라가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하지만 문득 이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결국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자근자근 밟히고 스스로 자멸하는 인간을 나타내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등장인물이 한데 얽혀 연주하고 노래하고 재현하는 액터뮤지션 버전이, 개인적으론 더 맘에 들었다. 보다 덜 현실적이고 보다 덜 인간적이고 보다 더 극적이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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