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앤 하이드] 뮤지컬 vs.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https://storage.googleapis.com/cdn.media.bluedot.so/bluedot.ilovemusical/2022/01/jykill.jpg)
[지킬 앤 하이드] 뮤지컬 vs.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누구에게나 하이드는 있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아마도 한국의 뮤지컬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지킬 앤 하이드>는 아마도 빠지지 않고 언급될 유명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지킬'은 남 배우라면 누구나 선망할 배역이고, 누군가 지킬을 연기한다는 것은 그가 이제 한국의 주연 배우 반열에 올랐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작품의 유명한 넘버 "지금 이 순간"은 뮤지컬을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매우 잘 알려져 있는 곡.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오랫동안 뮤지컬을 보아왔으면서도 원작을 제대로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읽어보니, 예상 외로 더 놀라웠다. 뮤지컬로 옮겨오면서 여성 캐릭터와 일부 내용 수정이 있었던 건 알았지만, 이렇게 주제 자체도 눈에 띄는 차이가 있을 줄이야. 뮤지컬을 보고 나서 느껴지는 감흥 및 메시지와 원작 소설을 읽고 난 느낌이 이렇게 차이가 날 줄 몰랐다. 지킬을 서사의 중심축으로 놓고 보았을 때, 뮤지컬의 경우는 지킬의 죽음을 보면서 일말의 안타까움과 애잔함을 느꼈다면, 원작 소설의 경우는 뭔가 인과응보의 느낌이 들었다. 파국을 향해가는 인간 욕망의 최후를 보는 느낌이었달까. 아마도 지킬이 가지고 있는 인간적, 남성적 매력 때문이겠지만. (하하)
근데 묘하게 원작의 지킬이 더 인간적 매력이 들었다는 게 이 지점의 아이러니.
선과 악의 분리
그간 선한 의지로 악을 눌러왔기 때문에 이를 분리했을 때 신체적으로 더 왜소하고 약하고 그리고 젊어진다는 설정은 꽤 그럴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언제나 악이 그 자체로 더 으리으리 강한 존재라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악도 어린이, 청소년, 그리고 성인으로 성장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 악은 한번 고삐가 풀려 발현된 뒤로 무지막지한 속도로 강해지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가볍고 거리낌없이 빠르게 움직인다. 이 은유적 표현은 비록 지킬처럼 분리되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내 안의 숨 쉬며 함께하는 악한 욕망과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이 지점에서 '인간은 근본적으로 악하다'는 것에 나도 내심 수긍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는. 이 작품은 성악설에 강한 신뢰를 가진 작가가 끈질기게 써나간 작품 같이 느껴졌다.
고삐 풀린 악의 결말
뮤지컬을 볼 때만 해도 지킬이 약으로 분리해 낸 결과가 선한 지킬과 악한 하이드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보면서 비로소 '선과 악이 공존하지만 선한 의지로 애써 악을 다스리고 있는' 지킬과 '악이 선을 완전히 눌러 지배하는' 하이드로 나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만약 그가 처음 약으로 자아를 분리해 낼 때, '악을 완벽히 통제해 낸 진정으로 선한' 그 누군가를 발현하였다면 이 작품은 어떻게 되었을까란 궁금증이 일었다. 흠. 그렇게 되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세계 3대 성인 뭐 이런 종교 스토리가 되었으려나. 그러면서 드는 또 한 가지 의문은 그들 역시도 인간으로 태어나 삶을 영위했던 것만큼 과연 그렇게 순수하게 100% 선한 인물이었으려나 하는.
하이드에 대한 변호
뮤지컬에서 하이드에게 일견 공감을 하게 되는 건, 사실 하이드가 저지르는 주된 악행이 좀 무례하다는 걸 제외하고 어딘가 정의의 사도처럼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섹시해 보이기까지 하는. 실제 하이드가 죽이는 인물들은 (물론 살인은 두말할 것 없는 악행이지만) 어찌보면 천벌을 받을만한 죽어 마땅한 인물들로 묘사된다. 아마도 하이드가 '악'이라는 걸 실감하는 건 오로지 루시에 대한 폭행과 살인 뿐일 것이다. 그래서 선과 악의 분리라기보다는 그냥 심약하고 점잖은 지킬과 다혈질에 거침없는 하이드 정도라고 느껴왔더랬다. 근데 소설에서 하이드는 어린이와 여성에 대한 이유없는 폭행, 죄 없는 신사에 대한 (뮤지컬에선 이분이 엠마 아버지였던 듯) 묻지마 살인 등을 저지른다. 게다가 이후 벌이는 일 또한 정말 악랄하고 교묘하기 이를 데 없고 말이지.
방치된 악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가를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관극과 독서였다. 그렇다면 우리네 인간들은 선한 의지를 위하여 얼마나 부단히 애쓰고 있단 말인가.
+
아마도 원작이 더 매력적이었던 건, 선한 목적을 위해 인격을 분리해내는 뮤지컬의 지킬과 달리, 소설의 지킬은 심심한 말년에 좀더 방탕하게 살았던 젊은 시절을 추억(?)하기 위해 악을 분리하는 실험을 했다는 것이다. 흠. 똑똑한 아저씨가 자칫 잘못하면 얼마나 어마망창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상황일지도.
++
이 작품의 유명 넘버 "지금 이 순간"은 결혼식 축가로도 많이 부른다고 하던데, 사실 작품의 맥락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시도는 하지 않을 터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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