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데스 타운] 뮤지컬 vs. 책 그리스 로마 신화

[하데스 타운] 뮤지컬 vs. 책 그리스 로마 신화

여전히 우리를 감싸도는 그리스 로마 신들의 이야기

풀잎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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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

그리스 로마 신화(이하, 그로신)는 반대편 대륙에 살고 있는 나에게도 어릴 적부터 무척이나 친숙한 책이다. 물론 제대로 된 원전을 읽었기 때문은 아니다. 그냥 흔하게 주변에서 그로신의 흔적을 접해왔다. 제우스나 헤라, 아프로디테, 아폴론 등등은 비단 원전이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대상들이니까. 생각해 보면, 어릴 적 즐겨먹던 불량식품 중 하나가 '아폴로'였는데, 이 역시 아마도 그로신에서 온 게 아닐까. 에피소드 역시 주섬주섬 알고 있었다. 복잡스러운 가족의 계보도 어렴풋이 파악은 했더랬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그러던 중에 이윤기 작가가 쓴 그리스 로마 신화(이하, 그로신)를 만나게 되었고, 거의 나오자 마자 구입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좋아해서는 아니고, 이 책의 저자인 이윤기 작가의 팬이었기 때문이다. <장미의 이름>의 번역가로 유명한 이윤기 작가의 팬이 된 계기는 그의 소설집 때문인데, 지금까지도 내 인생책 중에 하나다. 그 이후 소설 뿐 아니라 이분이 번역한 작품도 꾸준히 찾아 읽었더랬다. 좋아하는 작가가 쓴 익숙하지만 뭔가 궁금했던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라니, 안 읽을 이유가 없었다.

어쨌거나 그리 생각한 것이 나 뿐은 아니었던지, 이 책은 나오자 마자 엄청나게 팔려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청소년 필독서로 꼽히게 되었다. 그렇게 1권의 대성공 이후 2-5권이 차례차례 출간되었는데, 그 이후도 꾸준히 챙겨 읽었던 기억. 덕분에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더랬지. 하지만 무심한 세월은 훌렁훌렁 흘렀고, 그러면서 어느 새 기억에서도 조금씩 사라졌다. 일단 꼼꼼하게 기억하기엔 이들의 이름이 너무 복잡했다고 치자. 그래도 그로신의 다양한 에피소드는 조각조각 내 머릿속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하데스 타운

그러던 중 <하데스 타운>을 만났다. 덕분에 오래 전 읽고 쳐박아 둔 그로신도 다시 꺼내 들었다. 당시 책에 대한 여러 비판도 있었다지만, 분명 보다 더 생생한 느낌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만날 수 있게 해주었던 책. 여전한 문장과 신비로운 내용은 다시 읽어도 좋았다. 그리고 전에도 그리 생각했지만, 참 그네들의 신은 어쩜 이리 인간적인가. 참으로 친근하고 어설픈 신들이란 생각 ... 어쩌면 이게 그들의 매력인가. 사실 어떤 에피소드는 신답지 않게 치졸하고 비열하고 또 보다 더 인간적이다. 그런 측면이 정말 잘 드러난 에피소드 중 하나는 바로 이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이야기' 그리고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이 에피소드를 엮어 만들어 진 뮤지컬이 바로 <하데스 타운>되시겠다. 그런 이유로 혹시나 이 작품을 보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그로신 다는 아니어도 이 두 에피소드 만큼은 복습을 하고 갔음 하는 바람. 나 역시도 이 인물들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생각했는데, 가기 전에 다시 읽고 가니 또 새롭게 다가오더라는.

지금 만나는 그리스 로마 신화

현대적으로 각색된 <하데스타운>은 꽤나 세련되고 멋스러운 매력을 갖고 있었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지만, 무대 운용 역시 대단했다. 2층에서 보는 무대 면도 멋지긴 마찬가지. 근래 신작을 드물게 본 탓도 있었지만, 그래서 인지 더 새롭고 신선하게 시간을 보냈다. 하데스에게 보쌈(?!) 당해 지옥으로 끌려 내려가 살게 된 페르세포네의 이야기, 그리고 그의 어머니 대지의 여신의 슬픔으로 인해 4계절이 생겼다는 이야기는 어린 시절 읽어도 뭔가 좀 화가 나는 느낌이었는데 - 권태기에 찌들어 술주정뱅이로 보내는 페르세포네를 <하데스 타운>에서 만나니 뭔가 더 화딱지가 나는 느낌이더라는. 그런 디테일한 해석들이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그와 대비된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도 좋았는데 - 특히 에우리디케가 지욱에서 탄광노동자처럼 일하는 묘사는 무척이나 기발한 아이디어라 생각했다. 현대의 공장 노동자의 느낌도 있고 ... 이런 현대적 감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달까. 오르페우스의 노래로 위기를 이겨나가는 스토리도 새삼스럽게 좋았다. 뮤지컬 제작자들이 이에 착안하여 작품을 만들만하다는 ... 그런 느낌.

아는 결말

결말을 알면서도 다시 지옥으로 끌려나가는 에우리디케를 보는 건 무척이나 슬프고 가슴이 아팠다. '의심'이라는 것은 얼마나 사람을 약하게 만든단 말이냐. 하지만 그걸 진정 의심이라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냥, 그냥 궁금했던 거 아닌가. 이 하데스 ... 고약한 늙은이. 너무 지옥의 왕다운 함정이라니. 근데 묘하게도 정말 오르페우스의 최후를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그 이후 어떻게 되었더라, 괴로워했다는 건 기억이 나는데 ... 그래서 집에 돌아와 책을 확인하고는 진짜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아. 이렇게 비극적일 줄이야. 사랑, 사랑, 사랑이로구나. 오호 통제라.

무대로 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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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공연장을 찾은 것이 어언 15년이 되었습니다. 이곳에선 그간 꾸준히 객석에서 느꼈던 다양한 이야기를 함께 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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