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뮤지컬] 렛 미 플라이

[Review/뮤지컬] 렛 미 플라이

‘눈이 부시게’ 낡은 느낌

풀잎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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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그 순간으로

종종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떨 거 같아?” 그때와 다른 대답을 할 수도, 같은 대답을 할 수도 있다. 만일 후회가 남아있다면 분명 다른 대답을 하겠지. 아마도 이 작품의 모티브는 이 질문에서 시작하는 게 아닐까 싶다. 당신이라면 어떤가, 내 인생을 결정한 가장 중요한 순간은 과연 언제였는가? 극 중의 ‘남원’이 이야기하듯, 후회가 없는 삶이란 없다. 어느 선택이든 후회를 했겠지. 그렇다면 가장 후회를 적게 할 수 있을 선택이란 무엇일까. 만약 그때 그 사람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만약 그때 그 곳에 지원하지 않았다면, 만약 그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면, 만약 그때 그 기회를 잡았다면 지금의 나는 ... 후회를 좀 덜 했을까?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

알콩달콩하던 젊은 10대 커플이 순식간에 노부부로 전환 된다. 이 와중에 우리 정분이는 사라지고, 선희 할머니만 남아있다. 마음은 소년 남원이지만, 겉모습은 이미 완연한 할배인 남원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 사랑하던 우리 이쁜 정분이는 어디갔나. 두 소년 소녀가 1969년 달나라 로켓 발사 이야기를 라디오로 들으면서 신나하고 있었는데, 이게 뭐람. 무려 50여 년을 뛰어 넘어 온 거다. 사실 극 초반에 이 스토리를 따라가는 건 정말 공포스러웠다. 만약 내가 지금으로부터 50년을 한 번에 뛰어 넘는다면, 이미 다 늙어버린 몸으로 (그 사이 기억은 전혀 없는 상태로) 뛰어 넘는다면, 과연 어떨까. 정말 살고 싶어지지 않을지도. 미래 세계 구경이 무슨 소용이야. 내 몸에 기력이 이리 없는 걸.

뮤지컬 <렛미플라이>는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은 남원 할배와 그냥 이 모습을 구순구순 옆에서 지켜보는 선희 할매의 이야기가 과거 남원-정분의 이야기와 교차되면서 펼쳐진다. 사실 이 부분을 좀더 쫀쫀하게 표현했다면 좋았겠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선희 할매의 정체는 이렇겠지, 사실 남원 할배는 이런 상황이겠지 ... 이게 초반에 너무 뻔히 드러나서 좀 아쉬웠다. 그리고 어르신이 주인공이라고 해서 작품이 노될 필요는 없건만. 뭔가 묘하게 느껴지는 촌스러움도 문제. 사실 이 촌스러움 때문에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 역시 크게 기대가 안 되는 것은 더 큰 문제일 테고.

썩 괜찮은 배우들이 포진하여 작품의 빈틈을 채운다. 사실 보고 나면 어딘가 마음이 따뜻해 지는 것도 사실. 하지만 이전부터 많이 보아온 것만 같은 대학로의 휴머니즘 넘치는 그런 공연의 향취가 그득한 건 역시 아쉽다. 어쨌거나 2022년의 관객들이 보는 무대 아닌가. 그리고 지금의 70세 노인들이 이렇게 늙고 힘이 없었나? 지금의 노인들이 이렇게 무기력하고 정보가 부족했던가?

지켜보는 자의 슬픔

아마도 남원 할아버지는 중증의 치매를 앓고 계시는 것일 게다. 이런 증세를 보이는 게 처음이었을 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만 ... 아마도 이걸 지켜봐야할 선희 할머니에게는 앞으로 참 고단한 일이 될 수도 있겠다. 앞으로도 남원은 여생동안 계속해서 그날의 그 기차역으로 자신을 되돌리고 되돌리고 또 되돌리고 할 것이다. 그 선택에 후회와 아쉬움이 없었다면, 과연 그렇게 할 것인가. 그는 50년의 기억을 되돌리고 나서 자신과 주변을 바꾸고자 부단하게 노력한다. 늙어버린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지금 직면한 자신의 현재를 바꾸고자 동분서주를 하는 남원을 바라보는 구 정분, 현 선희의 마음은 어떠할까. 게다가 그 선택의 원인이 오롯이 ‘자신’임을 아는 이 상황에서.

이 작품의 가장 큰 구멍은 이 지점이었다. 정분 역할에 걸출한 배우들을 데려다 놓고 왜 저렇게 밖에 쓰지 못할까, 하는 아쉬움. 게다가 이 상황의 전모를 모두 알고 있는 건 오직 그녀뿐인데 말이지.

나가며

공연을 완성하는 마지막 점은 결국 관객. 동일한 작품을 보더라도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고, 아마도 미래의 나는 또 다르겠지. 그런 의미에서 이번 무대를 본 지금의 나 역시도 이 공연을 보는 내내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마도 난 그렇게 했을 것이다.’ 같은.

요즘의 나는 더 만족하기 위한 선택보다는 보다 덜 후회할 선택을 하기 위해 애쓰는 거 같다. 이 전의 후회를 바탕으로 말이지. 그게 슬프지는 않다. 아마도 그런 것이 조금씩 더 지혜롭게 나이 들어가는 길이라 생각한다.

어제 본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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