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 투모로우] 뮤지컬 vs. 책 나는 그래서 조선을 버렸다

[곤 투모로우] 뮤지컬 vs. 책 나는 그래서 조선을 버렸다

그들에게서 우리는 오늘을 건네 받았다

풀잎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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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의 어려움

실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을 만드는 건 꽤 어려운 일이다. 스토리가 이미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결말도 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끝을 아는 이야기를 보는 일이라니 ... 이만큼 맥 빠지는 일이 어디 있을까. 예를 들어, <곤 투모로우>에서 김옥균은 누군가에게 암살당해 죽을 거라는 거, 그리고 그를 죽이는 인물은 어쨌거나 ‘홍종우’라 알려진 사람이라는 것 같은. 주인공이 죽는 시점과 방식이 이미 알려져 버렸으니 일단 기본 김이 빠져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타개해야만 할까. 창작물의 창조주는 작가이기 때문에 어떤 빈틈도 작가가 채울 수 있지만, 실존하는 역사의 경우 그 빈틈을 메울 수 있는 건 결국 사료들밖에 없다. 하지만 그 어떤 역사도 완벽한 사료가 존재하기는 힘들다. 그런 이유로 역사를 소재로 하는 작품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역사의 빈틈을 메우는 작업이 다시 극작가들에 의해 이뤄진다. 그 정도에 따라 정통 사극, 팩션, 역사 판타지 등등으로 장르는 또 나뉠 수 있겠다.

홍종우가 한정훈으로

<곤투모로우>의 경우, 홍종우를 ‘한정훈’으로 바꾸고 그 인물에게 독립군 지도자의 역할을 부여하면서 완전한 팩션으로 만들어 버렸다. 초연에서는 홍종우를 그대로 두고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그로 인해 이런 저런 역사 왜곡 시비가 일어났더랬다. 아마도 재연은 이를 비껴가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결국 그 한정훈은 사실 김옥균을 흠모하고 사숙하던 이였고, 그를 암살하고 난 이후에는 그의 사상적 후계자의 길을 걷게 되는 것으로 역사적 사실을 변형하였다. 물론 김옥균과 고종, 그리고 실존하는 홍종우를 그대로 둔 이상, 여전히 이 작품이 역사 왜곡의 시비에서 벗어나기는 힘들지 않나, 하는 생각은 계속 든다. 하지만 이러한 변형 덕에 작품에 약간의 긴장감과 역동성이 더 해진 것은 맞다. 허나 이런 변화가 ‘이야기’적으로 더 매력적이어 진 것인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역사적 사실을 바꾸고 끼워 맞추는 과정에서 약간의 어색함과 모순이 생긴 것도 사실이기 때문.

그래서 나는 조선을 버렸다

이 작품과 같이 읽은 책은 <그래서 나는 조선을 버렸다>란 정명섭 작가의 역사서다. ‘왜 역사상 인물인 홍종우를 뮤지컬에서는 이러한 캐릭터로 재해석한 것일까?’란 생각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들었다. 뮤지컬은 김옥균을 재조명하는 동시에 그를 암살한 홍종우, 사실은 ‘한정훈’이라는 인물과 그에게 암살을 명령한 ‘고종’의 역사적 고뇌를 함께 다루고 있다면, 책은 사람들에게 스쳐지나가 왔던 ‘홍종우’라는 역사적 실존 인물을 김옥균과 함께 나란히 톺아보고 있었다. 근데 책을 읽다보니, 생각보다 홍종우라는 인물이 좀 신기하고 재밌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그 시대에 불란서 유학생이라니, 이 지점도 무척이나 흥미롭고 말이다. 그리고 그가 프랑스에서 견지한 태도와 자세도 무척 재밌었다. 무언가 대단히 진보적인 느낌이면서도 고루하고 꼰대 정서도 다분히 가지고 있는 그런 이중적인 느낌이랄까. 물론 김옥균을 암살하고 난 그 뒤의 행보도 그렇고 ...

홍종우는 <춘향전>과 <심청전>을 처음으로 유럽 땅에 소개한 사람인데, 왜 우리는 국어 시간에조차 이 인물을 모르고 지낸 것일까. 프랑스어로 번역된 내용이 이 책에 나오는데 그건 좀 흥미롭긴 했다. 별다른 의도가 있어서인지 아니면 그의 왜곡된 기억 때문인지, 우리가 알고 있는 원작과는 일부 같고 일부 다른 그런 묘한 내용으로 소개되었더라는. 물론 주된 정서나 교훈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말이다. 문득 이번에 본 <곤 투모로우>가 그가 번역한 <춘향전>, <심청전>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과 개작/번안된 작품의 주제가 본질적으로 같은 결을 갖고 있지만, 그 디테일한 세부 내용에선 꽤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느꼈던 거 같다. (결국 역사 왜곡에서 빚어지는 거부감은 이러한 메시지상의 차이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근대사: 내가 알던 김옥균, 홍종우

개화기, 일제 강점기와 같은 한국의 근대사를 다루는 공연들이 솔찮게 나온다. 사실 역사 시간에도 소홀히 배웠다 보니, 이 시대에 대한 지식은 정말 단편적인 수준이라, 이렇게 창작물로 만나면 정말 새삼스럽다. 고래적 역사보다도 지금과 훨씬 더 가까운 과거인데도 왜 그리 무심했던가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김옥균과 갑신정변에 대한 것도 그랬던 거 같다.

아주 어린 시절 김옥균의 위인전기를 읽었던 적이 있다. 집에 위인전집이 있었는데, 김옥균과 홍영식이 한권에 나뉘어 실려 있었다. 아마도 근대사 위인들은 한권을 다 채우기가 애매해서 그랬는지, 한권에 여러 명이 묶여 있었다. 근데 뭐 위인전에서 어릴 때 읽었던 게 지금 내게 도움이 되었냐 하면 솔직히 ‘그렇다’는 대답을 하지 못하겠다. 뭔가 잘못된 사상을 풋풋하게 어리고 생생한 뇌에 쫘악 - 주입시킨 느낌이 강하다. 물론 김옥균은 어떤 면에서 대단한 인물인 건 맞지만, 위인전은 온통 찬양 일색이라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왜곡된 생각만 주입한 거 같달까. 사실 그의 암살자인 홍종우는 천하의 몹쓸 놈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책이랑 뮤지컬을 보면서 도리어 엄청 긍정적인 느낌으로 전환된 셈이다. 그런 점에서 새삼스럽게 한 인물을 그렇게 한 시점에서 해석하고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오만하고 경솔한 일인가 싶기도 하다.

그들에게 받은 오늘

내가 만약 그 시대를 살았다면 어땠을까.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다루는 작품을 볼 때마다 언제나 생각하는 문제다. 아마도 하루하루 고구마 뭉텅이를 씹는 느낌으로 살아야 했겠지. 하루하루 얼마나 좌절감이 밀려들었을까. 정답이 없는 세상 속에서 정답을 찾아 헤매인다는 건 지금도 물론 마찬가지겠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얼마나 되는지는 그때와 지금은 현격하게 다르다. 보다 더 좋은 선택지가 무엇일지 보다 더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들이 우리에게 치열하게 고민하고 투쟁하며 건네준 미래를 나는 너무 손쉽게 현재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무대로 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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