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그인
  • 유료 구독하기
[Review/연극] 그때도 오늘

[Review/연극] 그때도 오늘

여전히 진행 중인 '오늘'의 이야기

풀잎피리
풀잎피리

연극 <그때도 오늘> 캐스팅

출연: 박은석, 이희준

사람을 믿다

제목이 그리 매력적이진 않았지만, 배우진들이 믿음직해서 냅다 예매한 연극이다. 심지어 주변의 평가도, 줄거리도 알아보지 않고 갔다. 사실 사람 때문에 선택해서 가다 보면 작품은 그닥 고려하지 않게 되는 듯. 그러다 보니 직접 무대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조금 놀라버렸다. 사회적 메시지가 훨씬 더 강한 작품이었다.

일제 치하 경성의 독립 운동

제주 4.3사건의 현장

부산의 80년대 민주화 운동

현재의 휴전선

이렇게 4가지 시대, 4가지 장소를 배경으로 하는 에피소드가 옴니버스로 이어진다. 두 명의 배우가 역할과 관계를 바꿔가면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는데, 그걸 보는 재미도 상당하더라는. 시공간 배경이 바뀌면서 말투도 바꾼다. 인물의 출신 지역도 가지가지로 설정되어 있는데, 그때마다 지역 사투리를 사용한다.

강한 메시지?

이미 시대적/공간적 배경을 듣는 순간 딱 질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각각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자세하게 다루거나 교조적으로 메시지를 우겨넣지 않는다. 그게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란 생각이 든다. 다만 그 시대 안에 살아가고 있는 개개인의 '참여적'인 인물들을 다룬다. 예를 들어, 독립 운동에 참여하다 일제에 잡혀 폭행을 당하고 구치소에 갇혀있는 학생 둘, 휴전선 철책근무를 서는 군인 둘 같은. 결국 대단한 사람들이 이 시대를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이러한 격변기에 고통을 받고 또 움직임을 보여주는 건 일반 민중들이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도리어 각각의 역사적 사건이 갖는 사회, 정치적 메시지는 약화된 느낌마저 든다. 현대사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이는 자칫 템포를 놓칠 위험조차 있을 정도. 하지만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좀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 정도는 든다. 그리고 각각의 시대에 대한 수많은 작품들이 널려있으니 각자 찾아봐도 좋겠다. 정말 각 에피소드 마다 생각나는 영화 또는 드라마 등이 수두룩하게 떠오른다. 심지어 뮤지컬 중에 골라보라고 해도 충분히 서너 편 열거 할 수 있을 듯. (윤동주 달을 쏘다, 광화문 연가, 여신님이 보고 계셔 등등)

다르면서 같은 언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4가지의 에피소드 각각이 다른 '한국의 지역말'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각 지역의 사투리를 캐릭터들이 쓰는데 - 이 연출은 진짜 새롭게 느껴졌다. 특히 제주 4.3을 다루는 에피소드는 배우들이 진짜 고생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만큼의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는 생각. 제주도 사투리의 경우 알아듣기 쉽지 않다 보니, 표준어 자막이 나온다. 사실 이 에피를 볼 때는 정말 영화 <지슬> 생각이 많이 났는데,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다들 떠올렸을 것이다. (중간에 '지슬'이란 단어가 실제로 등장하는데 괜히 반가웠다.) ​

현대사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크게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유명한 사건들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뭔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다거나 색다른 정치적 해석을 만나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언어를 달리하는 접근 방법이 새롭다 보니 그 나름의 매력이 충분히 있다. 그리고 이 각각을 다룰 때 필연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어둡고 무거운 느낌도 생각보다 부담스럽지 않았다. (이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것의 가치는 충분히 인정하지만, 솔직히 무겁고 슬프고 어려운 건 사실이니까.)

얼마 전 <드라이브 인 마이 카>라는 영화를 봤는데, 작품 안에 연극 <바냐 아저씨>의 연습 장면이 등장한다. 연극 연출가가 주인공인데, 그는 다른 언어를 하는 (다른 국적의) 배우를 캐스팅하여 각자가 구사하는 언어로 각 배역의 연기를 시킨다. 일본인 배우는 일본어로, 한국인 배우는 한국어로, 중국인 배우는 중국어로 말이다. 상대의 언어를 정확하게 ‘언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들은 서로서로 연기와 호흡에 맞춰 무대를 만든다. 성격은 다르지만 이 작품이 연이어 생각이 난 건, 이 두 연출 모두 ‘언어’의 민감성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내가 이 작품을 추천한다면, 그건 이 작품의 주제도 소재도 아닌 바로 이 지점 때문일 것이다.

나가며

꽤나 흥미롭게 관람해서 다른 배우의 캐스팅으로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안 이상, 이제는 공연장에 단단히 각오하고 가야할 거 같아서 다시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제 본 공연

풀잎피리

꾸준히 공연장을 찾은 것이 어언 15년이 되었습니다. 이곳에선 그간 꾸준히 객석에서 느꼈던 다양한 이야기를 함께 해보고자 합니다.

대화에 참여하세요

1 이달에 읽은
무료 콘텐츠의 수

무대를 아끼는 이들의 커뮤니티에 참여하세요

유료 구독으로 객석마녀를 응원해주세요

Powered by Bluedot, Partner of Mediasphere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