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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뮤지컬 vs. 소설

[아몬드] 뮤지컬 vs. 소설

풀잎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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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닮은 두 작품

소설은 소설이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고, 뮤지컬은 뮤지컬이기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만일 둘이 같다면 그냥 ‘이야기’로서 하나로만 즐기면 되는 것이겠지. 그런 의미에서 뮤지컬 <아몬드>는 이야기로서의 가치는 충분하지만, 뮤지컬로서의 가치는 조금 고민되는 부분이 있다. 물론 소설의 성공을 발판으로 만들어진 작품이고 분명 이 공연장을 찾아오는 이들 역시 원작의 아우라에 힘입은 바 클 것이다. 이미 뮤지컬 포스터부터가 그걸 너무나 여실하게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그간 원작 책과 뮤지컬을 함께 여러 편 보아왔지만, 이렇게 책 표지를 뮤지컬 포스터로 고대로 가져다 쓴 작품은 거의 처음 보는 것 같다. 어쨌거나 공연장에 오는 관객들이 소설 아몬드에 대한 만족도가 그만큼 클 거란 사실 하나는 확실하려나. (공연장에 갔던 당시) 책을 읽기 전이었던 나 역시도 소설 아몬드와 이 책의 표지는 익히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원작 아몬드 만큼 뮤지컬 아몬드도 장르적인 가치를 더 가지고 있는 작품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렇게 읽은 원작

최근 읽은 책 가운데 이렇게 가독성이 높은 책은 참 오랜만이었다. 책을 잡은 지 얼마 안 되어 절반을 뚝딱 읽어냈다. 말초적인 내용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런 점에서 정말 신기한 경험. 그리고 이렇게 원작을 존중하며 뮤지컬로 옮겨 놓은 작품은 역시 처음인 듯. 대사 하나하나 스토리 전개 부분부분이 정말 원작을 준용하여 이루어진 느낌이었다. 책을 절반 정도 읽고 공연을 봤는데, 어쩜 다음 내용이 1도 궁금하지 않게 내용이 흘러가지 뭔가. 그래서 인지, 내용을 모르는 후반부 공연을 훨씬 더 흥미진진하게 봤다. 그리고 후반부 내용 역시 소설과 그대로 일치할 거란 사실 역시 의심하지 않은 거 같다. 그런 의미에서 참 신기방기한 관극이었달까.

감정표현불능증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란 단어를 이제는 그닥 생소하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도 다양하게 많이 창작되고, 그에 발 맞추어 그들에 대한 현실의 문제도 갈수록 늘어가는 느낌이다. 이전엔 그들이 저지르는 범죄나 폭력 행위들이 주된 관심사였다면, 요즘은 인간의 뇌는 정말 복잡다단한 존재고 그로 인해 생겨나는 인간의 행동 역시 다양하게 분석될 수 있다는, 다른 관점의 이야기도 많이 등장한다. 선천적으로 뇌에 문제가 있게 태어난 아이가 부모와 주변 사람들의 교육과 훈육, 그리고 애정과 관심으로 정상(?)에 가까운 생활을 영위하고, 또 때로는 일반 사람들 이상의 정의로운 행동을 하기도 한다는 그런 이야기도 솔찮이 나온다. 이 아몬드 외에도 "비밀의 숲", "굿닥터" 같은 작품이 문득 떠오르는. 어쨌거나 이 작품 역시 그와 비슷한 느낌의 '감정 표현 불능증'을 가진 윤재의 이야기를 다룬다.

사랑과 감정의 상관 곡선

이 작품을 보면서 내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윤재의 성격이나 행동보다는 이 아이를 둘러싼 어른들의 선택, 결정 그리고 태도였다. 태어나서 얻은 부모나 성정만으로만 따진다면, 그 누구보다 좋은 조건을 가졌던 곤이는 부모를 잃어버리고 시설에서 자라면서 엄청난 감정의 생채기를 받고 비뚤어진 삶을 살게 된다. 반면, 가정환경이나 성격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어려움이 많았을 윤재는 엄마와 할멈의 사랑과 정성, 희생 뿐 아니라, 이웃 심박사 아저씨의 보살핌, 곤이와 도라의 우정을 통해 누구보다 더 사랑받는 아이로 자라난다. 아마도 타고난 씨는 좋지 않았지만, 그가 뿌려진 토양은 그 어디보다 비옥하고 풍요로운 것이 아니었을까. 곤이와는 반대로 말이다. 아마도 그랬기 때문에 윤재의 아몬드는 그 어려움을 뚫고 성장을 이루어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부모님께 ‘사랑받고 자란 아이는 그 누구보다 강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주 어렸을 적엔 그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던 거 같은데, 나이가 들고 내가 부모님의 나이가 되면서, 그리고 나보다 어리고 젊은 친구들을 점점 더 많이 만나게 되면서 이 말을 좀 실감하는 중이다. "아몬드"를 보면서 다시금 되새겨봤다.

배우의 쓰임새

문태유의 무대는 너무 오랜만이라 마지막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드라마에서는 종종 보면서 반가워했는데, 새삼 무대 위에서 하는 연기와 그가 내는 목소리가 참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감정이 없지만 감정이 있는 그 미묘한 경계를 잘 넘나드는 느낌이었다. 새삼 좋은 배우라는 생각을 했다. 긴 시간 긴 호흡으로 하는 연기를 보면서 그 집중력도 놀라웠다. 곤이 역의 조환지는 볼 때마다 놀라는 배우다. 처음 무대에서 봤을 때, 이렇게 잘 하지 않았던 거 같은데 볼 때마다 노래도 연기도 늘어있다. 괄목상대, 라는 한자성어를 머릿속에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조환지를 보면서 문득 떠올렸다. 성장하는 배우를 보는 건 여러모로 즐겁다. 제자리걸음, 심지어 퇴보하는 배우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마도 캐스팅을 미리 하고 작품을 만들어 가면서 연습을 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중간에 엄청 늘어버린 러닝타임 건도 그렇고 ...) 그래서 인지 정상윤, 김수용 같이 노래도 연기도 수준급 이상의 배우가 제대로 쓰여지지 않은 건 아쉽다. 물론 그들이 있어 이 작품이 더 탄탄하게 흘러가는 건 맞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성장소설의 판타지

아마도 성장소설의 형식을 띄고,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이라 그런지 –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요즘 그냥 밝고 건강하고 예쁘게 끝나는 작품을 더 좋아하고 즐겨보는 게 맞긴 한데,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끝나는 결말이 너무 판타지 같아서 조금 김이 새는 느낌은 있었다. 아마도 현실이라면, 윤재는 그냥 여전히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채 혼자 외롭게 살아가고, 엄마는 식물인간인 상태로 아마도 좀더 오래 고생하셨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의미에서 가장 판타지 같은 존재는 심박사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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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공연장을 찾은 것이 어언 15년이 되었습니다. 이곳에선 그간 꾸준히 객석에서 느꼈던 다양한 이야기를 함께 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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